1968년 이전, 테니스 세계는 두 개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에는 돈을 버는 프로 선수가 뛸 수 없었던 '아마추어 시대'. 명예와 돈, 그리고 진정한 최강자를 둘러싼 논쟁으로 가득했던 오픈 시대 이전 테니스의 흥미로운 역사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명예와 돈 사이의 딜레마, 아마추어리즘의 허상
'오픈 시대(Open Era)' 이전의 테니스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바로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입니다. 당시 국제테니스연맹(ILTF)은 테니스를 신사들의 스포츠로 규정하고,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뛰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따라서 윔블던, US 챔피언십 등 지금의 그랜드슬램에 해당하는 최고 권위의 대회들은 오직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만 출전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이론적으로 이들은 오직 스포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명예를 위해 뛰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대회 흥행을 위해 최고의 선수들이 필요했던 주최 측은 규정을 교묘하게 피해 '경비(Expenses)' 명목으로 스타 선수들에게 막대한 돈을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가짜 아마추어'라는 의미의 '샴추어리즘(Shamateurism)'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선수들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마추어 신분을 유지하면서도, 뒤로는 돈을 받는 위선적인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처럼 아마추어리즘의 순수성은 점차 퇴색되었고, 선수들은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명예를 좇을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프로로 전향할 것인지라는 평생의 딜레마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이 기형적인 구조는 결국 테니스계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족쇄가 되었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트 위에 공존했던 두 종류의 챔피언들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독특한 규정 때문에, 오픈 시대 이전에는 두 종류의 '챔피언'이 공존했습니다. 하나는 윔블던과 같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며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아마추어 챔피언'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모든 명예를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 프로 무대로 떠난 '프로 챔피언'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 전향을 선언하는 것은 매우 큰 뉴스였습니다. 프로가 되는 순간, 그는 윔블던을 포함한 모든 메이저 대회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로드 레이버, 켄 로즈웰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은 아마추어로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뒤 더 큰돈을 벌기 위해 프로로 전향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들이 떠난 프로 세계에는 판초 곤잘레스와 같이 압도적인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자신들만의 리그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팬들과 언론 사이에서는 늘 '진정한 세계 최강은 누구인가?'라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마추어 메이저 대회 우승자와 프로 서킷의 최강자가 맞붙을 수 없었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영원히 상상 속에만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는 마치 현대 축구에서 월드컵과 클럽 대항전이 완전히 분리되어,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과 유사했습니다. 이처럼 분리된 챔피언 시스템은 팬들의 흥미를 반감시켰고, 진정한 최강자를 가리기 위해 모든 선수가 함께 경쟁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키웠습니다.
분리되었던 두 개의 세계, 아마추어 메이저와 프로 대회
챔피언이 둘로 나뉘어 있었듯, 당연히 대회 구조 역시 이원화되어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윔블던, US 챔피언십, 프랑스 챔피언십, 호주 챔피언십 등 4대 '아마추어 메이저' 대회가 있었습니다. 이 대회들은 오늘날 그랜드슬램의 원형으로, 깊은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했습니다. 반대편에는 프로 선수들만을 위한 별도의 투어가 존재했습니다. 여기에도 '프로 슬램(Pro Slams)'이라 불리는 US 프로 챔피언십, 프랑스 프로 챔피언십, 웸블리 프로 챔피언십 같은 중요한 대회들이 있었습니다. 이 대회들은 상금 규모는 컸지만, 아마추어 메이저 대회만큼의 대중적 관심이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프로 선수들은 주로 소규모 투어 형식으로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경기를 치르는 '반스토밍(Barnstorming)' 투어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구조를 깨뜨린 것은 1968년, 가장 보수적이었던 윔블던의 주최 측(올잉글랜드클럽)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프로 선수들을 배제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프로 선수들에게도 대회를 개방하겠다고 전격 선언했습니다. 이 선언이 도화선이 되어 국제테니스연맹도 결국 아마추어 규정을 폐지했고, 마침내 모든 선수에게 문이 열리는 '오픈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테니스가 진정한 의미의 프로 스포츠로 거듭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968년 이전의 테니스는 명예와 돈, 아마추어와 프로로 나뉜 반쪽짜리 세상이었습니다. 진정한 챔피언을 가릴 수 없었던 이 분열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모든 선수가 함께 경쟁하는 통합된 프로 투어의 소중함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즐기는 오늘날 그랜드슬램의 역사가 이토록 복잡하고 흥미로운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테니스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