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관중의 환호와 우승 트로피의 영광을 뒤로한 채 라켓을 내려놓은 선수들. 그들의 삶은 코트 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대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자신의 경험을 후배에게 전수하는 '코치'로, 경기의 깊이를 더하는 '해설가'로, 그리고 성공적인 '사업가'로 변신한 레전드들의 이야기. 테니스 선수의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심층적으로 조명합니다.
경험을 유산으로, 코트 위의 전략가 코치(Coach)
많은 선수들이 은퇴 후 가장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길은 바로 자신의 평생 경험과 지식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코치(Coach)의 삶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선수였다고 해서 모두 위대한 코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코칭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선수의 심리를 이해하고, 맞춤형 전략을 수립하며, 때로는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어야 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성공적인 선수 출신 코치들은 '전술가', '멘탈 관리자', '기술 전문가'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앤디 로딕을 세계 1위로 이끈 브래드 길버트는 상대의 모든 것을 분석하는 '전술의 대가'로 유명했으며, 이반 렌들은 앤디 머레이에게 부족했던 강인한 정신력과 그랜드슬램 우승을 위한 승부사적 기질을 심어준 '멘탈 구루'였습니다. 또한, 노박 조코비치가 위대한 서버였던 고란 이바니세비치를 영입한 것은, 이미 완벽에 가까운 자신의 서브를 단 1%라도 더 발전시키기 위한 '기술적 미세조정'을 위함이었습니다.
선수 출신 코치의 가장 큰 장점은, 선수만이 알 수 있는 극도의 긴장감과 압박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랜드슬램 결승전의 챔피언십 포인트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조언은 단순한 기술적 지도를 넘어선 깊은 울림을 줍니다. 라파엘 나달과 카를로스 모야의 관계처럼, 어린 시절 우상이자 멘토가 코치가 되는 경우는 깊은 개인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성공 사례입니다. 최근에는 앤디 머레이의 코치를 맡았던 아멜리 모레스모처럼, 여성 코치가 남자 톱클래스 선수를 지도하는 사례도 늘어나며 코칭의 영역은 더욱 넓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안드레 애거시나 닉 볼리티에리, 패트릭 무라토글루처럼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거대한 '테니스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차세대 챔피언을 육성하는 길을 걷기도 합니다. 이처럼 코치로서의 삶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제자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코트 위에서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가장 보람 있고 명예로운 제2의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코트 밖의 해설자, 경기의 깊이를 더하는 해설가(Commentator)
카리스마 넘치는 플레이와 쇼맨십으로 코트를 지배했던 선수들 중 일부는, 은퇴 후 마이크를 잡고 해설가(Commentator) 또는 방송 분석가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개척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경기의 상황을 전달하는 '캐스터'와 달리, 선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청자들에게 경기의 이면에 숨겨진 심리전과 전술적 의도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제공하는 '컬러 해설가(Color Commentator)' 역할을 합니다. '코트 위의 악동'으로 불렸던 존 매켄로는 은퇴 후 가장 성공적인 해설가 중 한 명으로 변신했습니다. 그의 해설은 때로는 독설에 가깝지만,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유머 감각과 핵심을 찌르는 분석으로 전 세계 테니스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앤디 로딕 역시 재치 있는 입담과 솔직한 분석으로 차세대 명해설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선수 출신 해설가들은 시청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봅니다. 선수의 미세한 표정 변화나 스텝이 꼬이는 모습에서 심리 상태를 읽어내고, 특정 샷 선택이 어떤 전략적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또한, 라커룸의 분위기나 선수들 사이의 관계 등 내부자만이 알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놓으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유로스포츠, ESPN, BBC와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채널들은 그랜드슬램 중계 시 이들 스타 선수 출신 해설가를 영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한편, 은퇴 선수가 동료 선수를 비판해야 하는 해설가의 역할은 때로 인간적인 딜레마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고의 해설가들은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존중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그 신뢰를 얻습니다. 최근에는 앤디 로딕처럼 자신의 팟캐스트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분석을 제공하는 등,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은퇴 선수들의 활동 무대 또한 더욱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코트 밖의 챔피언, 성공적인 사업가(Businessman)
일부 선수들은 테니스 코트에서 보여준 승부사적 기질과 영리함을 비즈니스 세계로 옮겨와 성공적인 사업가(Businessman)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이들의 성공은 선수 시절부터 철저하게 구축한 '브랜드 가치'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리아 샤라포바는 자신의 고급스럽고 달콤한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온 사탕 브랜드 '슈가포바(Sugarpova)'를 성공적으로 론칭하여 전 세계에 판매하는 유능한 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이름만 빌려준 것이 아니라, 제품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로저 페더러는 그의 오랜 에이전트와 함께 'TEAM8'이라는 스포츠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하여 후배 선수들을 관리하고, '레이버 컵'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팀 대항전을 창설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스위스의 신발 브랜드 '온(On)'의 초기 투자자이자 공동 디자이너로 참여하여, 기업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수천억 원대의 자산가로 거듭났습니다.
비너스 윌리엄스는 자신의 패션 감각을 살려 스포츠웨어 브랜드 '일레븐(EleVen)'과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브이 스타(V Starr)'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동생 세레나 윌리엄스는 여성 및 소수 인종이 설립한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벤처 캐피털 회사 '세레나 벤처스(Serena Ventures)'를 이끌며 실리콘 밸리의 큰손으로 떠올랐습니다. 또한,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재단(Foundation)'을 통해 자선 활동을 펼치는데, 로저 페더러 재단이나 라파 나달 재단 등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전 세계의 소외 계층을 돕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기업처럼 운영됩니다. 이들의 성공은 단순히 선수 시절의 명성에 기댄 것이 아니라, 목표를 설정하고, 최고의 팀을 꾸리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챔피언의 DNA가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라켓을 내려놓은 코트 위 영웅들의 삶은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됩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2의 챔피언을 키워내는 코치로, 누군가는 날카로운 분석으로 경기를 보는 새로운 눈을 제시하는 해설가로, 또 다른 누군가는 코트 밖에서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는 사업가로 변신합니다. 비록 무대는 바뀌었지만, 정상에 오르기 위해 쏟았던 그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승부사적 기질은 각자의 새로운 분야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테니스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유산을 이어가는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